셀·모듈·팩 3단 구조에서, 모듈이 없어지고 있다
전기차 배터리는 오랫동안 셀→모듈→팩이라는 3단 구조로 조립됐다. 개별 셀을 모듈이라는 상자에 담고, 그 모듈 여러 개를 다시 팩에 담는 방식이다. 그런데 2019년 CATL이 CTP(Cell-to-Pack)를 상용화한 이후, 이 3단 구조의 가운데 층인 모듈이 통째로 생략되는 흐름이 업계 표준이 됐다. 2025년 기준 17개 이상의 완성차 차종이 이 방식(또는 그 확장판인 CTC·CTB)을 채택했다.
1편(원자재)·2편(소재)·3편(부품)이 셀 안에 들어가는 것들을 다뤘다면, 이번 편은 그 셀이 무슨 모양으로 만들어지고, 어떻게 조립되는지의 문제다. 이 편의 결론을 먼저 쓰면 이렇다.
셀 폼팩터(원통형·각형·파우치형) 사이에는 절대 우위가 없다. 승부는 셀 자체가 아니라 **“모듈을 얼마나 없앨 수 있는가”**로 넘어갔고, 이 통합의 대가는 항상 방열·정비성·안전 인증의 재설계 요구로 되돌아온다.
셀·모듈·팩 단계 지도 — 3개 폼팩터 + 통합 아키텍처
| 폼팩터/구조 | 핵심 물리 | 강점 | 약점 |
|---|---|---|---|
| 원통형 | 압력용기 형상, 권취 공정 | 최저 원가, 최고 자동화 속도 | 부피 이용률 열세(공극 9–21%) |
| 각형 | 금속 캔이 구조재 겸용 | 부피 이용률·구조 강성 동시 확보 | 셀 단가는 원통형보다 높음 |
| 파우치형 | 캔 없는 라미네이트 필름 | 최고 중량 에너지밀도, 설계 자유도 | 자체 강성 없어 통합 아키텍처와 상성 나쁨 |
| 통합 아키텍처(CTP·CTC·CTB) | 모듈 생략, 팩·차체 통합 | 부품·무게 절감, 주행거리 증가 | 정비성 후퇴, 열전파 방지 재설계 필요 |
이 지도에서 가장 중요한 사실은, 어느 폼팩터도 다른 폼팩터를 완전히 대체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원통형은 원가와 자동화에서, 각형은 부피와 강성에서, 파우치는 무게당 에너지밀도에서 각각 다른 물리적 트레이드오프를 대표한다. 그래서 이 시장은 “누가 이기는가”가 아니라 “어떤 용도에 어떤 형태가 맞는가”로 나뉘어 있다.
테제 1. 모듈은 원래 존재 이유보다 “죽은 무게” 페널티가 더 커졌다
모듈은 원래 안전과 조립 편의를 위해 존재했다. 개별 셀을 소그룹으로 묶어 관리하면 결함이 생겼을 때 그 소그룹만 격리할 수 있고, 조립 라인에서도 다루기 쉬웠다. 그런데 CATL이 2019년 CTP를 상용화하면서 이 계산이 뒤집혔다. 모듈 프레임 자체가 차지하는 부피와 무게가 “죽은 무게(dead weight)“로 재평가된 것이다. CTP 도입 이후 부품 수는 40% 줄고, 부피 이용률은 15–20%포인트 늘었다.
테슬라 CTC(Cell-to-Chassis)는 이 흐름의 다음 단계를 보여준다. Model Y에서 부품 370개를 줄이고 무게를 10% 줄이면서 주행거리를 14% 늘렸다. 모듈이 사라지고, 이제는 팩 자체가 차체의 구조 부재가 된다.
테제 2. 각형이 통합 아키텍처와 가장 궁합이 좋아 시장을 넓혀가고 있다
세 폼팩터 중 각형이 CTP·CTB와 가장 자연스럽게 결합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금속 캔이 그 자체로 구조 부재를 겸하기 때문이다. 이 궁합 덕분에 각형은 2025년 세계 EV 배터리 매출의 약 60%를 차지했고, 2030년에는 65%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CATL과 BYD 두 회사의 합산 점유율만 55%를 넘는다.
반대로 파우치형은 캔이 없어 자체 강성이 없다. 이 구조적 약점은 CTP 시대에 결정적인 불리함이 됐다. 중국 신에너지차(NEV) 설치량에서 파우치형 점유율은 2025년 2월 기준 1% 미만까지 밀렸다. LG에너지솔루션·SK온 같은 파우치형 강자들도 LFP 각형과 대형 원통형으로 포트폴리오를 옮기는 중이다. 다만 파우치형에게 완전히 문이 닫힌 것은 아니다. 전고체 배터리는 외부에서 수–수십 MPa의 압력을 걸어줘야 하는데, 캔이 없는 파우치형의 유연한 외장이 오히려 이 요구와 궁합이 좋다. 액체 셀에서는 약점이었던 “캔이 없다”는 특성이, 고체 셀에서는 강점으로 뒤집히는 것이다.
테제 3. 원통형과 각형이 정반대 모양으로 “구조재화”에 수렴한다
“셀 자체가 팩의 구조재가 된다”는 같은 목표를, 원통형과 각형은 정반대 기하학으로 풀고 있다. 테슬라의 4680은 원통을 최대한 키우는 방향이고, BYD의 Blade 배터리는 셀을 최대한 얇고 길게 늘이는 방향이다. 모양은 정반대지만 도달하려는 지점은 같다. 셀 하나하나가 모듈 없이도 팩의 하중을 버티는 구조물이 되는 셈이다.
BYD Blade는 부피 이용률 66%, 비틀림 강성 40,000N·m, 측면 충돌 침입량을 45% 줄이는 결과를 냈다. CATL의 Qilin(CTP 3.0)은 셀 사이에 냉각과 구조 지지를 겸하는 다기능 층을 넣어 부피 이용률 72%, 255Wh/kg, 1,000km 이상의 주행거리를 낸다. 폼팩터 경쟁의 다음 국면은 “어떤 모양이 이기는가”가 아니라 “어떤 모양이 구조재화를 더 잘 해내는가”의 경쟁이다.
테제 4. 대형화·통합의 대가는 항상 방열·정비성·안전 인증으로 되돌아온다
4680은 21700 대비 부피가 약 5.5배 늘었는데 표면적은 약 2.9배만 늘었다. 부피 대비 표면적이 줄어든다는 것은 열이 빠져나갈 통로가 상대적으로 좁아진다는 뜻이다. 셀이 커질수록 방열은 구조적으로 불리해진다.
CTP·CTB의 대가는 다른 곳에서 나타난다. 모듈이라는 방화벽이 사라지면서, 셀 하나에서 시작된 열폭주가 팩 전체로 번질 위험이 커진다. 이 위험은 이제 셀 자체의 안전 설계(LFP 같은 저발열 화학)와 팩 레벨 내화재가 떠안아야 한다. 각국의 열전파 지연 규제(UN R100 등)를 충족하는 일이 이제 통합 아키텍처 채택의 실질적 관문이 됐다. 정비 경제성도 후퇴한다. 모듈 단위 교체가 불가능해지면서, 사고 시 팩 전체 또는 대면적을 통째로 교체해야 하는 경우가 늘고 있고, 이는 보험업계의 손해율 상승 우려로 이어진다.
이 패턴은 세 폼팩터·통합 아키텍처 전부에서 공통으로 나타난다. 크기를 키우거나 층을 없애 얻는 이득은, 반드시 방열·정비·안전인증 어딘가에서 대가를 요구한다.
테제 5. CTC/CTB는 완성차의 조직 구조 자체를 바꾼다
CTP까지는 배터리 셀 회사 혼자서 완성할 수 있는 영역이었다. 팩까지는 셀사의 몫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CTC·CTB는 팩을 차체 구조 자체로 통합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완성차의 차체 설계 영역을 침범한다. 전통적으로 분리돼 있던 “차체 설계팀”과 “배터리 개발팀”이 같은 제품을 놓고 동시에 움직여야 한다.
이 변화는 수직계열화된 회사(테슬라·BYD처럼 셀과 차체를 한 회사가 만드는 경우)에 유리하다. 반대로 셀을 외부에서 조달하는 전통 완성차와 CATL 같은 셀 전문 기업의 관계는, “부품을 사고파는” 관계에서 “함께 설계하는” 관계로 재편돼야 한다.
폼팩터별 한 줄 지도
| 항목 | 시장의 한 줄 |
|---|---|
| 원통형 | 최저 원가·최고 자동화. 4680은 열관리 실용 상한에 근접했다는 시각이 우세, 46xx 규격은 OEM별로 파편화 중(4695·46120 등) |
| 각형 | EV 배터리 매출 60%(2025)→65%(2030) 장악. CTP·CTB와 최고 궁합, CATL·BYD 합산 55%+ |
| 파우치형 | 중국 NEV 점유율 1% 미만까지 밀림. 액체셀에선 약점인 “캔 없음”이 전고체에선 강점으로 반전 |
| 통합 아키텍처 | 17개+ 차종 채택(2025). 부품 감소·주행거리 증가의 대가는 방열·정비성·안전인증 재설계 |
2026년, 이 단계에서 지켜볼 세 가지
- 46xx 규격의 파편화가 어디까지 갈 것인가 — 테슬라 4680, BMW·리비안의 4695, BMW의 46120까지 갈라지는 중이다. 원통형의 전통적 강점이던 “표준 규격의 규모의 경제”가 대형화 국면에서 희석될 수 있다.
- CTC·CTB의 열전파 규제 충족 여부 — 모듈 방화벽이 사라진 자리를 셀 화학과 팩 레벨 내화재가 대신해야 하는데, UN R100 같은 규제를 충족하는 실증 데이터가 얼마나 쌓이는지가 통합 아키텍처 확산 속도를 정한다.
- 비수직계열화 완성차의 CTC 대응 — 테슬라·BYD처럼 셀과 차체를 함께 설계하지 못하는 전통 완성차가 CATL 같은 셀사와 “공동 설계” 관계를 얼마나 빨리 구축하는지가 이 경쟁의 다음 승부처다.
My Take
이 단계를 정리하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셀이 무엇으로 만들어지는가”라는 질문이 어느새 “셀이 무엇을 없애는가”라는 질문으로 바뀌어 있었다는 점이다. 좋은 셀을 만드는 경쟁에서, 좋은 셀 덕분에 무엇을 생략할 수 있는가의 경쟁으로 무게중심이 옮겨간 셈이다. 이 관찰에서 얻은 판단을 네 갈래로 정리한다.
하나, 폼팩터 논쟁을 “승자 예측”이 아니라 “용도 매칭”으로 다시 읽어야 한다. 원통형·각형·파우치형 중 무엇이 이길지 묻는 질문 자체가 잘못됐다는 걸 이 단계에서 확인했다. 셋은 서로 다른 물리적 트레이드오프를 대표할 뿐이고, 실제 승부는 화학(액체냐 고체냐)과 용도(원가 우선이냐 에너지밀도 우선이냐)가 정한다. 그래서 나는 이제 “이 회사가 어떤 폼팩터를 쓰는가” 뉴스를 볼 때, 그 선택이 그 회사의 제품 포지셔닝을 어떻게 반영하는지부터 본다. 폼팩터 선택 자체가 이미 전략을 드러내는 신호다.
둘, 통합의 이득에는 반드시 숨은 청구서가 따라온다는 걸 이 단계가 가장 명확하게 보여준다. 모듈 제거·대형화·구조 통합이 주는 원가·무게·주행거리 이득은 화려하지만, 그 청구서는 몇 달 뒤 방열 설계·정비 매뉴얼·안전 인증 규제라는 형태로 도착한다. 이 패턴을 알고 나니, 새로운 통합 아키텍처 발표를 볼 때 “이번엔 무엇을 얻었는가”만큼 “이번엔 무엇을 떠안았는가”를 함께 찾게 됐다. 발표 자료에는 대개 전자만 강조되고 후자는 각주에 묻혀 있다.
셋, 46xx 규격 파편화는 이 산업의 표준화 압력이 생각보다 약하다는 신호로 읽는다. CTP·CTC 같은 아키텍처는 업계 전체가 같은 방향(모듈 제거)으로 수렴하는데, 정작 셀 하나의 규격(46mm 지름 패밀리)은 OEM마다 다르게 쪼개지고 있다. 이 대비는 흥미롭다. 아키텍처 철학은 공유하되 부품 규격은 각자 최적화한다는 뜻이고, 이는 앞으로도 완성차마다 “우리만의 셀”을 원하는 유인이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부품 표준화로 원가를 낮추려는 압력보다, 자기 차량에 최적화된 셀을 확보하려는 유인이 이 시장에서는 더 세다고 판단한다.
넷, 한국의 위치는 이 단계에서 다소 복잡하다. 소재·부품 단계에서 정밀기술로 앞서던 한국 3사는, 폼팩터 경쟁에서는 상대적으로 방어적인 위치에 있다. 파우치형의 강자였던 LG에너지솔루션·SK온이 각형·대형 원통형으로 포트폴리오를 옮기는 흐름 자체가, 파우치형이 CTP 시대에 구조적으로 밀렸다는 이 단계의 테제를 그대로 보여주는 증거다. 다만 LG에너지솔루션이 리비안 R2에 4695 셀을 공급하기로 한 계약처럼, 원통형 대형화·전고체(파우치 재조명) 양쪽에 발을 걸쳐두는 전략은 합리적인 헤지로 보인다. 이 시리즈의 다음 편(⑤ 제조·공정)에서는 이 셀들이 실제로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그 공정의 병목을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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